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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윈스턴 처칠의 강인함과 결단력응 보여주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 줄거리 및 리뷰

by 유진보살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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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키스트 아워> 정보

●  줄거리

●  가장 위대한 영국인, 그리고 그림자

●  역사와의 차이

 

 

영화 다키스트 아워 포스터

  영화  <다키스트 아워>  정보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2017년 공개된 조 라이트 감독의 역사 드라마 영화이다. 이 여화는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영국의 총리가 된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줄거리  

영화는 1940년 5월 당시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이 독일의 프랑스 침공과 아돌프 히틀러 군대의 영국 진격 위협으로 인해 증가하는 압력에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체임벌린의 지도력은 그의 정당 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보수당의 일원인 윈스턴 처칠이 잠재적인 후계자로 제안되었다. 체임벌린은 비록 내치에는 성공했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협상해버린 인물인 반면, 처칠은 전쟁광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과의 전쟁을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주장한, 거의 유일한 대독 강경파였기 떄문이다.

 

초기의 의심과 특정 정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새로운 총리로 임명된다.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를 책임지게 되었다.  히틀러의 군대는 빠르게 전진하고 있고 유럽에서 승전을 거듭한다. 유럽에서 남은 퍼즐은 영국 뿐이었다. 미국은 1차 대전의 여파로 인해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파리마저 허무하게 점령당하자 사기는 떨어지고 히틀러와 협상하자는 여론은 나날히 늘어간다. 영국의 운명은 위태롭다.

 

처칠은 자신의 당 내부, 특히 독일과의 평화 조약을 추구하는 것을 믿는 핼리팩스 자작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처칠은 어떤 협상도 격렬하게 반대하며 영국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처칠은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 그는 영국 국민들의 지지를 모으고 그들이 독일의 위협에 맞서 싸우도록 고무시켜야 한다. 그는 강력한 연설을 하고 그의 재치와 웅변술을 사용하여 사기를 복돋우고 국가에 결단력을 심어준다.

 

이 기간 동안 처칠은 또한 그의 아내 클레멘타인 처칠과 그의 개인 비서 엘리자베스 레이튼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의 지지는 처칠의 의사 결정과 그러한 힘든 시기 동안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 요인 중 하나였다. 실제로 처칠은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고 조합하는 인물로 유명했다. 물론 결단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이었지만.

 

이 영화의 중추적인 순간 중 하나는 처칠이 핼리팩스와 체임벌린에 의해 독일과 협상된 평화 조약을 고려하도록 촉구받는 것이다. 그러나 처칠은 항복하기보다는 차라리 싸워 전멸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생각을 단호하게 된다. 그의 단호한 입장이 궁극적으로 우세하고, 싸움을 계속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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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처칠은 의심, 내부 갈등, 그리고 개인적인 반성의 순간들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의 변함없는 결단력과 강력한 리더십 기술은 영국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결심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처칠은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영국군의 철수를 명령하고, 독일군에 포위된 수천 명의 병사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한다. 됭케르크 대피 작전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전쟁의 전환점이 되고 영국 국민들에게 희미한 희망을 준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이 보여준 불확실성과 역경의 시기에 보여준 캐릭터와 리더십의 힘을 묘사한다. 영화는 처칠의 상징적인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연설로 끝을 맺으며, 단호하고 영감을 주는 지도자로서 역사에서 그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전반적으로,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역경에 직면한 윈스턴 처칠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다.

 

  가장 위대한 영국인, 그리고 그림자  

영화의 주인공인 처칠은 이런 저런 성취를 남겼지만,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보여준 그의 지도력은 그 정점으로 여겨진다. 그는 영국인들을 자극하고 그들이 독일의 공격에 저항하도록 영감을 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늬 강력한 연설과 역경에 직면한 변함없는 결의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 국가의 사기를 복돋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게임으로 치면 지속적으로 버프를 걸어준 셈이다.

 

히틀러와의 협상 거부, 됭케르크 철수 성공 등 처칠의 전략적 결단도 높이 평가된다. 그의 지도력은 전쟁을 통해 영국을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고, 미국과 소련과의 동맹은 승리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전시 지도력에 더하여 처칠은 길고 두드러진 정치 경력을 가졌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총리를 두 차례 역임했으며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전후 유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보존을 위한 확고한 옹호자였다.

 

그러나 처칠의 유산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평가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지지와 특정 국내 문제들에 대한 그의 처리와 같은 그의 초기 정치적 결정들을 지적한다. 게다가, 인종과 식민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와 경솔한 망언들은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역사와의 차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런던 지하철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창작이다. 영화 속 처칠이 런던 지하철(지하철)에서 일반인들과 교류하는 장면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다.

 

다만 처칠은 완고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폭 넓게 소통하며, 전시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을 해왔기에 이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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